영화 ‘애자’

참 인상적인 영화를 봤다, ‘애자’라... 애자(愛子)일까, 애자(哀子)일까... 사랑하는 사람? 아니면 슬퍼하는 사람? 처음 영화는 학교에서 시작했던 것 같다. 어느 교실에 무엇이 그리 불만스러운지 짜증을 내며 화를 내는 한 여학생, 그녀가 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우리나라의 여자들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여자이기 때문에, 혹은 누나나 여동생이기 때문에, 그리고 어머니이기 때문에... 애자의 오빠는 재수, 삼수 끝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똑똑한 애자는 그게 불만이다. 어머니는 오빠를 위해서 공장도 지어주었다, 애자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글을 쓰고 있다. 신이 내려주신 글솜씨, 하지만 그녀는 빚투성이에 어머니의 시집 가라는 협박에 가까운 강압에 시달리고 있다.
한없이 강하기만 할 것 같았던 어머니, 억척스럽고 구두쇠에 고집은 뭐가 그린 센지, 정말 맵고 짠 김치같은 그녀가 갑자기 쓰러졌다. 항상 그녀와 부딪히기만 하고 넘어뜨리려고도 했던 애자는 그 순간부터 그녀를 지탱하기 위해 애쓴다. 마치 넘어가려는 기둥을 안간힘을 써서 붙잡는 것처럼...
사실 가장 무서운 것은 ‘미운정’이라고 한다. 사랑도 미움도 시간이 지나면, 정으로 바뀌는 것, 바로 이것이 가장 마지막에 남는 좋은 감정의 형태일 것이다. 애자가 어머니를 생각할 때 들었던 마음이 존중, 공경, 그리고 배려의 감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캐리어 우먼적인 모습의 모친을 보며 그녀는 부딪혀 보며, 반항해도 괜찮다, 그렇게 그녀는 말도 안 듣고, 청개구리처럼 어긋난 것이 아닐까...
한순간 푹, 고꾸라진 어머니의 모습에 애자는 덜컥 겁이 난 거다. 갑자기 왜 이러지? 이게 아닌데, 엄마? 사실 어머니가 애정을 쏟고, 또 모든 힘과 정열을 쏟아 지원을 해준 것은 애자의 오빠이다. 이름은 기억 안나지만, 정현이라고 해보자. 정현은 그녀의 도움으로 분에 넘치는 미국 유학도 다녀올 수 있었고, 주제에 안 맞지만 공장도 차리고 ‘공장장’이라는 우두머리도 되었다. 그의 성취라기 보다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하지만 항상 그의 마음에 가득찼던 것은 무엇일까... 어머니에 대한 감사? 물론 있었겠지만, 오히려 자신에 대한 미움과 부끄러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오히려 애자의 글솜씨는 천부적이라고 할만큼, 뛰어났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단지 타고난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그녀의 능력, 그녀는 그것으로 세상에 나아간다. 문학상에도 도전하고 작품도 써가면서... 어느 누구의, 특히 어머니의 도움도 없이 말이다.
사실 그녀의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결핍이 한가지 있다. 바로 아버지, 부(父)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 기억은 영화 전반적으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비중을 차지한다. 영화 내내, 앞자리에 앉지 못하는 어머니의 트라우마는 예전 기억, 바로 조수석에서 목숨을 잃은 부군, 그 사건에 기인한 것이다. 가장의 부재는, 따뜻하고 자상한 어머니의 모습에서, 강하고 억센 모습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그녀를 만들었고,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아야 할 애자는 그 부재에 대한 반작용으로 더욱 반항을 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애자는, 가장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던 어머니마저 잃게 되었다. 처음엔 부정하고 싶었고 또 연기하고 싶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어머니를, 그녀는 만류하며 자신에게 닥칠 역할에 대해 조금 더 준비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사라진다면, 그녀가 그 짐을 떠받아야 한다. 비록 결혼은 했지만, 어느 한구석 미덥지 않은 오빠와 자신에게 버팀목이 전혀 되어주지 못하고, 결국 헤어져버린 남자친구, 그녀는 그 누구의 도움을 기대지 못하고 세상을 헤쳐나가야 한다.
어머니와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간 곳은 바로 법당사(이름이 확실하지 않다.), 할머니가 수행을 하러 들어간 절이지만,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 그곳에서 밤을 보내던 어머니는,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 끝내고 싶어한다. 염화칼륨, 주사를 팔뚝에 놓으려는 어머니를 애자는 만류해 보지만, “엄마, 이제 가게 해줘.”라며 떠나가는 그녀. 그리고 “먼저 가서 미안해.”
장례식장에 상주는 분명 오빠지만, 본질적인 상주는 분명 애자이다. 그녀와 어머니의 마지막 이별은 이곳에서, “아빠 보러가니까 좋아?” “그럼, 좋지.” “조금만 있다 가.” “이제 가면 못보겠네?” “...” 애자는 그렇게 이별을 온전히 마치고, 또 새 출발을 하게 된다. 직업 작가, 톨스토이와 헤르만 헤세 같은 그런 작가의 길을 말이다.
단순한 순애보 영화가 아닌, ‘애자’라는 영화는 인생이라는 모습에서 많은 면을 우리에게 시사해 주고 있다.







